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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트 오브 킬링> (The Act of Killing, 2012) : 잔혹한 역사를 마주하다.

by 영화감성 2025. 3. 19.

충격과 공포의 다큐멘터리, 잔혹한 역사를 마주하다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다큐멘터리 <액트 오브 킬링>은 단순한 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며, 가해자의 시선에서 역사를 탐구하는 강렬한 실험입니다. 영화는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을 배경으로, 과거 살인자들이 자신들의 범죄를 재연하도록 요청받는 독창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와 퍼포먼스가 결합된 이 작품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가해자의 심리를 면밀히 파헤치며 잔혹한 역사와 마주하게 합니다.


살인자가 자신의 범죄를 재연하다

영화의 핵심 인물은 안와르 콩고입니다. 그는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반공주의 정권의 지원 아래 공산주의자로 몰린 수십만 명을 학살한 자경단 지도자였습니다. 일반적인 다큐멘터리가 피해자의 증언을 중심으로 사건을 조명하는 반면, <액트 오브 킬링>은 가해자인 안와르 콩고와 그의 동료들이 직접 학살을 연출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심리적 변화와 내면의 갈등을 드러냅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자신들의 범죄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며, 과거의 행동을 할리우드 갱스터 영화처럼 멋있게 꾸미려 합니다. 그러나 연출이 거듭될수록 안와르는 점점 불안해지고, 결국에는 자신의 죄책감을 마주하게 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구역질을 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은 영화의 가장 강렬한 순간 중 하나로 남습니다. 특히 그가 자신이 저지른 행위를 반복적으로 떠올리면서 감정적으로 붕괴되는 과정은 관객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충격을 남깁니다.


가해자의 시점에서 본 역사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우리가 익숙하게 접하는 피해자의 증언 대신, 가해자의 시선을 통해 역사를 조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관객들에게 큰 불편함을 주면서도, 동시에 잔혹한 현실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특히 안와르 콩고가 살인을 재연하며 점차 심리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은 인간성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그는 처음에는 범죄를 미화하지만, 결국 자신의 행동이 단순한 "업적"이 아니라 끔찍한 "학살"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킵니다. 우리가 역사를 바라볼 때, 가해자들은 종종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국가나 이념의 이름으로 학살을 미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액트 오브 킬링>은 이러한 미화를 철저하게 해체하면서, 학살자들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죄책감을 드러내는 데 집중합니다.

연출 방식과 효과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다큐멘터리의 전통적인 형식을 뛰어넘어, 영화 속 영화라는 독특한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학살자들이 직접 자신들의 범죄를 영화처럼 연출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내면을 더욱 깊이 탐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형식은 가해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미화하는 방식과, 그들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주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또한 영화는 의도적으로 피해자의 직접적인 증언을 배제하고, 오로지 가해자들의 이야기만으로 학살의 공포를 드러냅니다. 이는 더욱 소름 끼치는 효과를 만들어내며, 관객들로 하여금 과거의 참상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학살자들은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영화적 요소로 포장하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 스스로도 과거를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심리적 변화를 생생하게 포착하는 데 성공합니다.


인간성과 죄책감에 대한 질문

<액트 오브 킬링>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인간성과 죄책감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우리는 안와르 콩고를 통해 가해자가 과거의 기억을 어떻게 합리화하는지를 목격합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스스로의 양심을 속이지 못하고 무너집니다. 그의 변화는 인류의 보편적인 심리를 반영하며, 우리 사회가 잔혹한 역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또한 영화는 개인적인 죄책감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억과 역사적 서술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국가가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 가해자가 자신의 범죄를 어떻게 서술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단순히 인도네시아의 사례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반복되는 현상입니다. 학살을 경험한 국가들에서 역사는 때때로 가해자의 시각에서 서술되며, 이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지우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결론

<액트 오브 킬링>은 단순한 다큐멘터리를 넘어서는 강렬한 체험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인간의 폭력성과 죄책감, 그리고 역사적 책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불편하지만 반드시 봐야 할 작품이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과거를 직면하게 합니다. 다큐멘터리가 얼마나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이 작품을 보고 나면 결코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없을 것입니다.